유튜버 보겸(본명 김보겸)이 쓰는 ‘보이루’라는 인사말이 여성 혐오적 표현이 아니라는 법원 판단이 최근 확정됐습니다. 이 사건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 여성혐오주의와 극단적 페미니즘 등 현재 우리 사회의 갈등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충돌한 사건입니다.
사건의 발단
윤지선 세종대 초빙 교수는 지난 2019년 12월 철학연구회 학회지에 발표한 논문 <관음충의 발생학>에서 '보이루'가 초등학교 남학생부터 20~30대 젊은 층에 이르기까지 여성혐오 용어 놀이의 유행어처럼 사용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단어가 여성의 특정 신체부위와 영어 인사말 '하이'의 합성어라는 겁니다. 반면, 보겸은 자신의 실명인 '보겸'과 인터넷 인사말인 ‘하이루’를 합성해 만든 표현이지 여성 혐오 표현이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보겸이 강력히 항의하자 윤 교수와 철학연구회는 표현을 일부 수정했지만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결국 보겸은 윤 교수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사건일지
2019년 12월12일
서강대 철학연구회, 윤지선 교수 <관음충의 발생학> 논문 게재
2021년 2월11일
보겸, 철학연구회에 항의 방문
2021년 2월16일
철학연구회, 윤 교수에게 소명 요구
2021년 3월19일
철학연구회, 논란 된 18번 각주 수정 공식 발표
2021년 7월07일
보겸, 윤 교수 상대 '1억' 손해배상청구 소송
2022년 6월21일
서울중앙지법 원고(보겸) 일부승소 판결
2023년 2월2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부 원심 유지
2023년 3월03일
윤 교수 상고 취하, 판결 확정
사건의 쟁점
재판에서의 사건 쟁점은 '윤 교수가 허위 사실을 적시해 보겸의 인격권을 침해했는지 여부'였습니다.
법원의 판단
법원이 재판 과정에서 들여본 사건의 세부 쟁점은 △윤 교수가 허위사실을 적시했는지 △각주 18번이 헌법상 학문의 자유 영역에 포함돼 법적책임을 물을 수 없는지 △‘보이루’라는 말이 공적인 관심사안인지 등이었습니다,
'허위사실 적시'
법원은 모두 아니라고 봤습니다. 1심은 "2013년경 부터 보겸과 보겸 팬들이 사용한 용어로, 보겸의 실명 '보겸'과 인터넷에서 인사표현으로 쓰이고 있던 신조어인 '하이루'를 합성한 인사말로 사용해 왔을 뿐 여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의미는 전혀 없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도 윤 교수의 논문은 과거 또는 현재의 사실 관계에 대한 진술로서 허위인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해 보겸의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인정했습니다.
헌법상 학문의 자유
법원은 "학문의 자유도 잘못된 연구결과나 사실과 다른 내용을 의도적으로 소개하는 행위 등을 통해 선의의 제3자를 해친다면 헌법상 보호 범위 내에 있는 행위로 보기 어렵다"며 윤 교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공적 관심 사항
법원은 원고가 400만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이고 원고의 유행어가 다수의 사람들에게 사용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봤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원고의 인터넷 방송 인사말이 공인된 학술지 논문에서 다뤄져야 하는 공적 관심 사항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법원은 실제로 '보이루'라는 용어가 일부 여성혐오 표현(여혐 표현)으로 사용된 사실이 있다면서, 배상액을 청구금액의 절반인 5000만원으로 제한했습니다.
누가 처음 '보이루'로 여성을 혐오했나
지금부터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보겠습니다. 그렇다면 '보이루'를 여성혐오 표현으로 처음 사용한 사람은 누굴까요. 판결을 찬찬히 뜯어보면, 한 유튜버의 잔망스러운 인사말을 누군가 의도적으로 왜곡했고 그것을 언론이 받아 '보이루'를 '여혐표현'으로, 보겸을 여성혐오자로 낙인 찍은 것이 사건의 원인이었습니다.
"'여혐 표현' 시작은 극단적 여성주의 커뮤니티"
법원은 "윤 교수의 논문이 발표되기 전인 2018년 초경 극단적 여성주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보겸이 인사말로 사용하는 보이루라는 유행어가 여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여성혐오 단어라는 식으로 보이루의 의미를 왜곡하며 원고를 비방하는 시도가 이뤄졌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이런 왜곡에 따라 일부 초등학생들이 '보이루'를 여성혐오 용어로 사용했다고 봤습니다. 방송사도 이런 현상을 사회적 문제로 보고 보도했습니다. 같은 해 6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보고서에서도 언론 보도 등을 인용해 '보이루'를 여혐 표현이라고 적시했습니다. 윤 교수는 논란이 거세지자 '보이루'를 여혐 표현으로 지적한 언론보도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자료를 언론 인터뷰 등에서 자신 주장의 근거로 활용합니다.
논문의 진의
이 논란을 연혁적으로 짚어보면 저명한 페미니스트 학자인 윤 교수가 구독자 보겸의 인사말을 '공적인 관심 사안' 영역으로 끌어들인 것이 우연치만은 않아 보입니다. 윤 교수 역시 논문에서 보겸이 의도적으로 처음부터 보이루를 ‘여혐 표현’으로 썼다고 단정했습니다. 극단적 여성주의 커뮤니티와 윤 교수의 주장과 목적이 정확히 일치한 겁니다. 보겸은 사건 당시 구독자 400만명(2023년 3월 현재 328만명)을 보유한 국내 최고의 인플루언서였습니다. 윤 교수가 논문에 다른 여성혐오 표현들을 예로 들기도 했지만 모두 주체가 명확하지 않거나 일본 포르노 영상물 대사들이었습니다.
‘성차별 항거’ 투쟁?
윤 교수는 이 사건 초기부터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보이루 논문' 논란을 '사회적 여성차별 영역'에서 대응합니다. 논문을 문제 삼는 자체가 여성차별이라는 겁니다. 보겸이 소송을 제기한 뒤에는 일부 극단적 여성주의 커뮤니티가 여론전을 펼치며 윤 교수 지지에 나섭니다. 윤 교수는 1심에서 패소한 뒤 법원 판결을 "'여성억압의 본보기'로 활용하고자 하는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의 폭압성"이라고 규정하고 항소를 선언합니다. 하지만 또 패소했습니다. 윤 교수는 올해 2월28일 상고장을 제출하며 대법원까지 갔지만 지난 3일 돌연 취하합니다. 이유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윤 교수의 '유토피아'
다만, 윤 교수는 상고 취하 이튿날인 지난 4일 자신의 SNS에 "유토피아란 존재하는 실재라기 보다는 오히려 디스토피아를 물리치는 잠재적 지향점으로 기능한다. 그 디스토피아를 맞설 용기와 불안, 그리고 절망의 경험들이 우리에게 유토피아라는 잠재적 지향점을 삭제시킬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보이루 논란'의 의미
이번 ‘보이루 논란’은 인격권과 학문의 자유에 대한 법리적 판단 외에도 ‘여혐표현’의 생성과 발전,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과 이슈화 되는 전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현재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플루언서와 그의 발언이 '공적인 관심 사안'인지에 대한 의문도 해소할 수 있었지요. 다만 윤 교수가 끝까지 다퉈 대법원 판례로까지 남겨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