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법무법인(유한) 태평양이 조용복 전 국회사무차장(차관급)을 고문으로 영입했습니다. 입법·국정감사 대응 역량 강화 차원입니다.
보통 변호사와 그들이 모여 있는 로펌업무는 수사단계에서의 방어나 송무, 기업자문 등 직접적으로 법률과 관련 있는 일만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일입니다. '법률자문'이라는 영역이 가장 넓고 수익도 많이 납니다. 대형로펌일수록 '법률자문'이 캐시카우인 셈이지요. 대기업들도 특정 로펌 한 곳에게만 법률자문을 맡기지는 않습니다. 7대 로펌 중 4~5개 로펌을 한꺼번에 법률자문 로펌으로 두고 있는 곳도 많습니다.
어쨌든 세월이 흐르면서 이 '법률자문' 영역이 더 세분화됐는데, 국정감사 대응도 그 중 하나입니다. '입법'이라는 말을 붙이기는 했지만, 실제 로펌 변호사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입법' 컨설팅 업무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국정감사 대응' 앞에 '입법'이라고 붙이는 것은 일종의 페이크(Fake)라고 생각됩니다.
로펌의 국정감사 대응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은 김앤장법률사무소인데 기록을 봐도 언제부터 본격화 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기사를 추적해보면 적어도 참여정부 이전부터로 보입니다. 그 즈음부터 다른 대형로펌들도 국정감사 대응 컨설팅을 시작했으니까요.
국정감사에 대한 기업 등의 대응은 오너는 물론 CEO의 증인채택 차단, 증인채택시 국감장에서의 방어 등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중 베스트가 증인채택 차단입니다. 유수한 대기업들의 수많은 '대관업무' 중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관 담당자들 중에는 소속 기업 CEO의 국정감사 증인채택을 차단한 것이 결정적 성과로 인정되면서 임원으로 영전한 이들도 있습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고요.
그도 그럴 것이, 국감장에 끌려나와 여야 의원들의 고함과 호통 앞에서 쩔쩔매는 자신의 모습이 TV와 유튜브로 전국에 생중계되는 일은 그 누구에게도 상상도 하기 싫은 일입니다. 그래서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던 사람들 중에는 차라리 ‘검경 포토라인’ 앞에 서는 것이 낫겠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포토라인 앞에서는 대답할 의무도, 머물러 있어야 할 시간 제한도, 진실만을 말해야 할 사명도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년 전 검찰 포토라인 앞에 섰던 모 대기업 대표님은 출석 전 일주일 동안 전문가(?)들과 함께 ‘포토라인 집중 리허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분은 구속기소됐습니다.
어쨌든 이런 '국정감사 대응'이라는 광고(?)문구가 로펌 소식란에 올라온 것은 다소 생경한 일입니다. 그동안 국정감사 대응 업무는 로펌들에게 있어 살짝 '로비스트' 분위기가 날 수도 있는 부분이라 꽤 조심스러운 부분이었습니다.
2022년 국정감사를 일주일쯤 앞둔 오늘 만난 모 대형 로펌 대표변호사는 "로펌들은 대외적으로 증인들에게 증언해야 할 답변 중 법적인 분쟁 여지를 남기지 않는 선에서 조언이 제공된다고는 하지만 화법과 제스처, 의상까지 컨설팅 해주는 곳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습니다.
재미 있는 것은 PR기업 중에는 아예 국감 증인을 위한 가이드북을 내놓는 곳도 많습니다. 통합커뮤니케이션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하고 있는 피알원이라는 회사는 지난 8월 <국정감사 증인의 말티켓 : 안정되고 설득력 있는 답변>이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국정감사 증인 답변 메뉴얼 시리즈 2'로 전에 발간한 <국감 증인대응 메뉴얼>의 후속쯤 됩니다.
여기에서 소개하고 있는 국감증인이 맞닥뜨릴 수 있는 주요 상황은 24가지인데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답변이 곤란한 경우 △답변 시정이 필요한 경우 △잘못된 답변 태도 △올바른 답변 태도 △답변시 조심할 말실수 △모르는 질문 답변 △증인의 발언요청 △불출석 사유서 유의사항 △사건·사고 사과 △여러 질문 한번에 답하기 △위증죄 유의사항 △자료제출 거부 △국회의원에 질문하기 △즉답 요구 질문 대응 △국회의원들의 증인 압박 △국회의원들의 증인 번호 △증인 출석회피 유의사항 △국회의원 지적사항 공감 △국회의원 지적사항 반대 △증인불러놓고 정부에 질문 △증인의 초지일관 대응 △추측성 답변 자제
목차만 보면 알듯말듯 요상한 항목도 보입니다만 국감 출석을 앞 둔 증인들 눈에는 대부분 혹할만한 것입니다. 어떤 내용들이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려 했습니다만 한 권에 물경 30만원짜리라 그만두었습니다.
어찌어찌 주절대다보니 본의 아니게 책장사 광고글 같이 되었습니다만, 로펌업계나 주변 PR업계에서는 국정감사 대응도 '한 철 장사'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로운 요즘입니다.
그건 그렇고, '해외 나간 대통령의 말실수 예방 메뉴얼'이나 '대통령 막말로 곤혹스러운 국민 대처법', '대통령실 주관 대국민 듣기평가 대응법'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문서나 업체는 어디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