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록절'에 참석하신 산울림 김창완의 어머니. 구순이 넘으셨음에도 아들의 그림을 보러 직접 방문하셨다고. 이를 본 관객들이 김창완의 명곡 '어머니와 고등어'를 떠올린 것은 당연하다. (사진=캡틴락컴퍼니)
평소 좋은 공연이란 좋은 여행과 닿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의도치 않은 길을 맞닥뜨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여러 상념에 잠기는. 그 과정에서 여러 질문들이 샘솟고, 다시 해답을 찾아가는 시간인지라, 어쩌면 자정작용 같은 것이겠지요.
지난 주 '문화 르네상스'를 표방하며 무려 5일간 온·오프라인에서 열린 '경록절'을 보며, 이건 좋은 여행이라는 생각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첫째날, 홍대 '무신사개러지(구 왓챠홀)'로 입장하니, 거장과 신예, 관객과 음악가, 남녀노소가 넝쿨처럼 얽히고설켜 있는데, 그걸 보면서 "문화란 이런 게 아닐까" 절로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거인' 김수철(65)이 기타 솔로 잼을 길게 늘어뜨리다, "치키치키차카차카"를 쏟아내고, 뒤따라 무대로 돌진한 '악동 밴드' 크라잉넛이 합동 가위점프(곡 '젊은 그대' 때)를 하며 세대 통합을 할 때, 너무나도 짜릿했고요.
다음날부터 100여개에 달하는 팀들이 집이나 스튜디오에서 제 각기 돌발적이고 창의적으로 수놓은 공연들은 "아이돌이나 트로트 중심으로 재단된 오늘날 대중음악계에 이런 음악과 공연도 있었음"을 새삼 확인시켜준 자리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문득 4륜 구동을 끌고 아이슬란드의 울퉁불퉁한 길들을 지나, 간헐천과 수백만개의 폭포를 맞닥뜨릴 때 느껴지는 희열 같은 것들이 연신 겹쳐졌습니다.
광흥창 인근의 '마포아트센터'에서는 산울림 김창완 선생님의 작품부터, 작가 8인의 그림들을 모아놓은 전시회가 열렸는데, 이 곳에서 크라잉넛의 데뷔 초 시절을 그린 생동 있는 그림들을 보며, 잠시 록키드였던 학창시절의 저 또한 되새겨 볼 수가 있었습니다.
파도처럼 들려오는 '낭만가객' 최백호 선생님의 그윽한 정취와 삶의 의미를 곱씹어보고, 가수 양파가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을 부르다 울음을 삭히며 말을 이어가던 모습 또한 예술이 선사하는 삶의 아름다운 순간들이라 생각했습니다.
모든 여행이 그럴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제게는 생각지도 못했던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여행이 좋은 여행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무대 위에서도 마찬가지로, 생각지도 못한 연주와 잼, 낭만의 언어들을 들을 때, 그것이 내 삶에 좋은 작용을 할 때, 그것은 좋은 공연이자 또 다른 여행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절반의 립싱크’가 표준화돼 기계처럼 차갑게 느껴지는 일부 아이돌의 대형 공연에서라면 볼 수 없을 광경들입니다. 실제로 요즘 아이돌의 공연은 미리 립싱크로 일부 구간을 해놓고, 라이브 때 그것을 라이브인 것처럼 부른다고 하더군요. 좋은 공연을 만들기 위함인지, 아니면 그것이 오히려 좋은 공연을 망치는 길이 아닌지, 좋은 공연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