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피의자 장제원’의 사망으로 권력형 성범죄 수사가 또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것으로 보입니다. 피해자는 어렵게 용기 내 9년 만에 고소했지만 사법적으로 피해를 인정받을 기회를 박탈당했습니다. 법조계에선 수사기관이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장제원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2023년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일 경찰에 따르면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31일 밤 11시40분쯤 서울 강동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유서 등을 바탕으로 타살 정황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유서에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장 전 의원은 권력형 성범죄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2015년 11월 부산디지털대학교 부총장으로 재직할 당시 비서 A씨를 성폭행한 혐의(준강간치상)를 받습니다.
A씨는 당시 20대 총선 출마를 앞두고 선거 포스터 촬영을 한 장 전 의원이 뒤풀이 자리에서 술을 마신 뒤 성폭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합니다. A씨는 술에 취해 기억을 잃었고, 다음날 눈을 떠보니 호텔 침대였다고 했습니다.
반면 장 전 의원은 A씨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반발했습니다. 장 전 의원은 지난달 5일 페이스북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탈당한다고 밝혔습니다. 장 전 의원은 피해 사실이 10년 가까이 지난 점을 언급하며 “특별한 음모와 배경이 있는 게 아닌가 강한 의심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지난달 28일 경찰 조사에서도 장 전 의원은 이러한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A씨는 지난달 31일 장 전 의원 주장을 반박하며 증거를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A씨는 피해 당일 호텔 내부를 촬영했는데, 장 전 의원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A씨를 부르고, 추행을 시도하는 상황 등이 담겼습니다. 아울러 사건 당일 A씨가 서울해바리기센터를 방문해 피해 사실을 알리고 응급키트 채취도 했습니다. 검사 결과 A씨의 신체와 속옷 등에서 남성 유전자형이 검출됐다고 A씨 측은 말했습니다.
A씨 측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A씨를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법무법인 온세상)는 보도자료에서 “A씨는 성폭력 피해를 당한 후 9년의 시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이 어떤 공격에 맞서야 하는지 고스란히 목격해 왔다”며 고소가 늦어진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장 전 의원 사망으로 기자회견은 당일 취소됐습니다.
피의자인 장 전 의원이 사망함에 따라 수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입니다. 권력형 성범죄를 저질렀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 수사 역시 박 전 시장 사망 이후 공소권 없음으로 끝났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물리적으로 더 수사하기 어렵다”며 “더 조사하는 행위 자체로 직권남용이 될 수 있고, 어찌 조사한다 해도 사망 동기와 관련해 고인의 명예 때문에 공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피해자만 덩그러니 남게 됐습니다. 특히 권력형 성범죄 사건에서 피의자가 사망하는 경우 피해자는 가해자로 뒤바뀝니다. 박 전 시장 사건을 통해 경험했습니다. 박 전 시장 지지자들은 피해자를 비난하고, 심지어 살인죄로 고발까지 했습니다. 박 전 시장 유족들은 아직도 박 전 시장 성희롱을 인정한 국가인권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습니다. 피의자의 죽음으로 사건이 끝나는 게 아닌 겁니다.
서혜진 변호사(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는 “박 전 시장이 사망하면서 권력형 성범죄 사건 피해자가 더 말하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며 “피해자가 가해자 안위까지 걱정하게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서 변호사는 “인간으로선 안타깝지만 형사절차의 피의자와 피해자로 봤을 때 피해자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라며 “피해자는 사법적으로 피해를 인정받고 보호받을 기회를 상실했다. 피해를 회복할 하나의 방법을 평생 잃은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수사기관에서 이대로 수사를 종결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왕미양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은 “20대였던 피해자가 권력자를 상대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권력형 성범죄 피의자들에게 죽어서도 끝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피의자가 사망하더라도 고소인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특별 기록으로 남겨놔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서 변호사 역시 “수사기관의 궁극적 목적은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있다”며 “이미 장 전 의원을 조사한 만큼 고소 사건이 어느 정도 진실에 다가갔는지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