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차철우 기자] 미국과 중국, 이른바 G2(주요 2개국) 무역전쟁이 걷잡을 수 없는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세계 경제가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쏘아 올린 국가별 상호관세가 9일(현지시간) 발효되는 가운데, 중국은 이튿날 이에 대한 보복 관세를 곧바로 부과할 계획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씨를 던진 이번 관세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구축한 세계 자유무역 질서를 송두리째 흔드는 조치이자, 최악의 시나리오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과 무역 축소, 그로 인한 수요 감소와 생산 위축, 즉 전 세계의 동반 경기 침체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입니다.
특히 미·중 무역전쟁 격화 시 환율전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함께 나옵니다. 미국은 약달러를 유도해서 자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반면, 중국은 관세 부담을 상쇄하기 위해 위안화 평가절하에 나설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환율전쟁 상황이 오면 한국같이 미·중 교역 비중이 큰 국가들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미·중 무역전쟁이 한층 격화할 전망인 가운데, 각 국의 셈법 계산과 전략 고민이 분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G2 전면전
트럼프 대통령이 경쟁국부터 동맹국까지 가리지 않고 약 60개국에 부과한 상호관세는 9일 0시1분을 기해 발효됩니다. 일각에서 국가별 상화관세 부과 일시 중단 검토설도 나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부인하면서 관세 강행 의지를 재확인했습니다. 이에 맞서 중국은 "국제 규칙보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는 것은 경제적 괴롭힘"이라고 주장하며 10일부터 모든 미국산 수입품에 34%의 보복 관세를 부과할 예정입니다.
중국의 보복 관세 조치에 트럼프 대통령은 또다시 "중국이 34% 관세를 철회하지 않으면 미국은 중국에 5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며 "그것은 9일부터 발효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에 중국 상무부는 "미국이 중국에 5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이에 중국은 강력히 반대한다. 미국이 관세 부과 조치를 확대한다면 중국은 자국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응수하며 사실상 후속 보복 조치를 예고했습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20% 관세를 부과한 뒤, 지난 2일 상호 관세 조치로 중국에 34%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키로 했습니다. 이에 중국 역시 지난 4일 모든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34%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기로 발표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중국에 대해 50%의 추가 관세를 거론함에 따라 일련의 엄포가 모두 실현되면 미국의 대중국 평균 관세율은 100%를 웃돌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 같은 관세율은 사실상 미국이 양국 간 교역을 포기한 수준으로 풀이됩니다.
위안화 절하 카드까지?…환율전쟁 확전 가능성 ↑
미·중 간 관세 전쟁이 치킨게임 양상으로 격화하면서 전 세계 우려는 커지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트럼프발 무차별 관세 정책으로 미국의 물가 상승과 스테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글로벌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짙어지고 있습니다. 관세로 대외 불균형을 해결할 수 없는 미국이 종국엔 교역 상대국의 환율 조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마저 제기됩니다. 글로벌 관세전쟁이 환율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도 대중국 강공 일변의 관세 정책을 펼친 바 있습니다. 당시 중국은 보복 관세 대신 위안화 가치를 15% 넘게 평가절하하는 방식으로 맞섰고 그 결과 관세 충격의 70% 이상을 상쇄할 수 있었습니다. 이 같은 위안화 평가절하는 미국과의 경제력 격차를 10년 이내로 좁히는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입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조치가 관세 다음에 환율전쟁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전망은 1기 집권 당시 경험했던 뼈아픈 정책 실패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이 같은 전망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전쟁 밑그림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미란 보고서에서도 엿보입니다. 지난해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직후 스티븐 미란 허드슨베이캐피털 전략담당자가 쓴 41쪽 분량의 이 보고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추구하는 목표를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구조적인 강달러를 해소하고 미국 제조업을 부흥시키며 동시에 기축통화국 및 패권국 위상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미란 위원장은 미국이 주요 국가에 자국 통화의 가치를 높이도록 압박하고 달러 가치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며 관세를 통해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즉 외국 정부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통화가치 조정에 순순히 합의할 가능성이 낮은 만큼, 관세를 통해 선택을 압박하자는 얘기입니다.
문제는 환율전쟁으로 확전될 경우 우리나라와 같이 미·중 교역이 크고 제조업에 강점이 있는 국가들은 위기에 직면한다는 점입니다. 이미 미·중 무역전쟁 격화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휘청이고 있는 가운데, 국내 원·달러 환율 역시 변동성이 확대되며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습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5.4원 오른 1473.2원에 마감하며 지난 2009년 3월13일(1483.5원)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날 <뉴스토마토>와 한 통화에서 "미·중은 10년 전에 이미 겨뤄봤기 때문에 서로 결코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이 위안화 평가절하 나설 경우 미국은 환율 조작국으로 또다시 지정할 것"이라며 "중국이 위안화 평가절하에 나서면 한국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게 우리나라 상품들이 중국에 엄청 밀릴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원화 약세를 막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국이 예전보다 미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를 줄이면서 맷집이 커졌다"며 "누가 이겨도 타협은 되긴 될 텐데, 중국이 쉽게 물러날 것 같지 않다"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달러 강세를 바로잡기 위해 마러라고 합의(제2 플라자 합의)를 다시 추진하려는 것 같다"며 "기축통화국 지위를 생각하면 강세여야 하지만, 무역수지 적자를 생각하면 약세여야 한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강 교수는 이어 "개별 국가들이 자국 통화를 약세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가격 경쟁력을 높여 놓으니 미국 제품이 수출이 안 된다는 것으로 그걸 바로 잡겠다는 얘기다"며 "결국 미국 달러화가 약세가 돼야 하는데, 본인들이 대놓고 하기는 뭐하니 이제 올바른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19년 9월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정상회담을 위해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박진아·차철우 기자 toyouj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