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정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호관세 유예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처럼 중요한 결정을 손바닥 뒤집듯 하루 아침에 바꾸며 혼란을 키우는 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추진과 관련해 미국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에 재검토를 지시하더니, 금세 “일본으로 가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며 말을 바꾸는 등 현안에 대한 태도도 매일 달라집니다. 주변 모든 나라의 골치를 썩게 하고 있지만, 사실 미국 내부에서의 행보가 더욱 기괴한데요. 토마토Pick이 트럼프 대통령의 ‘이상기류’를 정리했습니다.
지난 3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기자들에게 골드카드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트럼프 새긴 ‘골드카드’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시절부터 불법 이민자 척결에 앞장섰습니다. 그 기조는 현재도 변함이 없는데요. 이 과정에서 이민 제도에도 대거 수술을 가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발표된 행정명령에는 비자 신청자에 대한 심사 강화, 출생 시민권 제한, 국경 보안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미국에서 일반 영주권은 ‘그린카드’인데요.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현지시각) 부유한 외국인에게 주는 특별한 영주권, 즉 ‘골드카드’ 판매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카드 가격은 500만달러(약 72억6100만원)입니다.
황당하게도 골드카드에는 트럼프 본인의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 자신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 주목도를 높이는 방법을 써왔는데 이번에도 그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다만 국가 공식 프로그램에 대통령 개인의 얼굴이 들어가는 건 이례적인 일이죠.
생일날 군 퍼레이드 기획?
최근 미국 현지 언론은 트럼프 행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생일인 6월에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계획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의회전문매체 더힐 등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일(현지시각) 군과 국방부 청사가 있는 버지니아주 알링턴 카운티 등에 ‘6월14일 펜타곤에서 백악관까지 4마일(약 6.4km)에 걸친 군사 퍼레이드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6월14일은 트럼프 대통령의 생일인 동시에 미 육군의 창립 250주년 기념일인데요.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8년 1기 행정부 시절에도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추진했지만 행사 비용이 9200만달러(약 1352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면서 포기한 바 있습니다. 그 계획을 다시 추진하는 것이죠. 1기 행정부 시절과 달리 지금은 트럼프 대통령을 견제할 반대세력이 없어 추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이를 두고 미 언론들은 “군사 퍼레이드는 대부분 권위주의 국가들의 지도자들이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3선 도전’ 헌법 개정하나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2기 행정부 초반임에도 벌써부터 3선을 거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각) 3선 도전 가능성에 대해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해 논란이 됐습니다. 이전부터 농담조로 3선에 대해 발언했는데요. 정작 백악관에 재입성하고 나니 농담이 농담이 아니라는 분위기입니다. 실제로 일부 지지자들은 그의 3선을 주장하기도 했으며 ‘J.D. 밴스 부통령이 대선에 출마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부통령으로 출마해 당선된 후 밴스 부통령이 사퇴해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한다’는 등의 시나리오까지 나오는 판국입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 시나리오에 “그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는데요. 문제는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4선을 한 이후 지금까지 지켜진 수정헌법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능성이 낮긴 하지만, 만일 시도된다면 윤석열의 비상계엄과 같은 파장과 반발이 예상됩니다.
언론 때리는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시절에도 언론에 적대적이었습니다. 그 행보는 변함이 없는데요. 대표적으로 AP 통신 기자의 백악관 취재를 거부한 사건이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만의 명칭을 미국만으로 변경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는데요. 이에 AP 통신은 멕시코만이라는 표현을 계속 쓴다고 반대했죠.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취재를 막아버린 것입니다. 연방법원은 1심에서 이 결정이 부당하다고 판결했지만, 백악관은 항소한다는 방침입니다.
언론 탄압적 행보는 이에 그치지 않는데요. 지난달에는 미국의 소리(VOA)와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철퇴를 가했습니다. 미국이 두 국제방송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한 것인데요. RFA는 정규직 75%를 일시해고하고 VOA도 해외 지국 직원들을 휴직 처리했습니다. 지난달 일론 머스크가 “RFE(자유유럽방송)와 VOA가 극좌파 활동가로 채워져 있어 폐쇄해야 한다”고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진행된 일이죠.
퍼레이드, 개헌…익숙한 향기
‘트럼프 3선설’이 제기되자 강하게 반발한 건 당연히 양원제의 상대편인 민주당입니다. 민주당의 켄 마틴 전국위원회 위원장은 SNS에 “이것이 독재가 하는 일”이라고 비난했는데요. 실제로 최근 행보들은 어딘지 낯이 익습니다. 자신의 얼굴을 새긴 ‘골드카드’는 지폐에 자신의 초상화를 새긴 사담 후세인 등 독재자를 떠올리며, 불가능한 연임을 시도하는 모습은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떠올리게 합니다. 언론탄압은 독재정권의 일상입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독재국가의 지도자들과 똑같은 행보를 걸을 것이라고는 장담할 순 없습니다. 민주주의의 산실인 미국에서 그런 비극은 발생해서도 안되겠죠. 다만 우려가 잦아지면 그게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걸, 최근 우리는 너무나 충격적으로 지켜본 바 있습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