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이선재 인턴기자] 47일짜리 임시직인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헌법재판소 알박기에 이어 한·미 관세협상 타결까지 시도할 기세입니다. 헌재가 권한대행의 대통령 권한 행사에 제동을 걸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데요. 통상 대응을 핑계로 사실상 대선주자 행보를 이어가면서, 대선용 협상이 이뤄질 수 있단 우려가 나옵니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 특사인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경제재생상이 16일 미국행 비행에 앞서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트럼프, 90일 내 협상…속도전 호응하는 한덕수
미·일 정부는 16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첫 장관급 관세 협의에서 빠르게 협상을 타결하고 양국 정상이 공동으로 결과를 발표하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 다음 협의를 이달 중 실시하고 장관급뿐 아니라 실무자 수준에서도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양국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일본 대표인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장관)은 협상 직후 취재진과 만나 "미국이 (상호관세가 유예된) 90일 안에 합의를 성사하려고 한다"며 "조기 합의를 하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교섭의 향후 진전은 아직 알 수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관련 보고를 받은 뒤 "미·일 간에 여전히 입장차가 있다"며 "쉬운 협의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순순히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얘기입니다.
일본은 미국의 요구 사항을 최대한 듣고 나서 일본의 대응 방향과 양보 수준을 정한다는 방침인데요. 협상 전략에 따라 주도권을 가져올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실제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홍보할 성과가 필요한데요. 동맹국과의 협상조차 난항을 겪는 모습을 보이게 되면, 트럼프 대통령에겐 치명타입니다.
반면 다음 주 본격 협상에 돌입하는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원스톱 쇼핑에 발을 맞추고 있습니다. 한덕수 대행은 "알래스카 LNG(천연액화가스)와 관련해 미국 측과 화상회의를 하겠다"며 "이른 시일 내에 구체적 내용을 도출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뭘 들고 왔는지 보고 협상을 시작하겠다"는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나온 발언입니다. 관세를 협상 지렛대로 사용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모든 패를 공개하며 좋은 먹잇감이 돼버린 꼴입니다.
구체적 내용을 도출하겠다는 대목도 문제입니다. 한 대행이 협상을 타결하게 되면, 47일 뒤 들어설 다음 정부는 그 내용을 뒤집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데요. 결과적으로 한 대행이 다음 대통령의 헌법재판관 임명권에 이어 차기 정부의 통상정책 결정권마저 침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앞서 헌재는 만장일치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재판관을 임명할 권한이 있는지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한 대행은 대선 출마설에 이도 저도 아닌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광주 기아자동차 공장(4월15일)에 이어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4월16일)를 방문하며 지역 안배까지 신경 쓴 정치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총리실은 그가 사비로 광주광역시의 한 식당을 후원하고 손 편지를 보냈다며 미담까지 생산하고 있습니다.
윤석열씨와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2023년 용산 대통령실 청사 국무회의장으로 들어서는 모습.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경제·통상 사령탑 내주 방미…"졸속 타결 우려"
한 대행은 오히려 대선 출마 군불을 때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 대행의 대선 출마 여부를 궁금해했다"는 정상 간 통화 내용은 한 대행이 흘리지 않는 이상 나올 수 없던 내용이었습니다. 이제는 "트럼프 측이 한 대행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얘기마저 흘러나옵니다. 한 대행이 졸속 합의로 자신의 치적을 쌓으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박찬대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17일 국회 정책조정회의에서 "한 대행이 졸속 협상으로 국익을 저해한다면, 신 을사오적으로 이름을 남길 것"이라고 일갈했습니다. 김민석 최고위원은 "한덕수 출마용 관세협상 안된다"며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습니다.
반면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전날 국회에서 열린 탄핵 청문회에서 "한 대행은 협상을 신중하게 하고 있다"며 감싸기에 나섰습니다. 경제 사령탑인 최 부총리, 통상 수장인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내주 미국을 방문해 본격적인 협상에 나선다는 계획입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협상 타결은 위험하다고 경고합니다. 정재환 인하대 교수는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알래스카 LNG 등 의제가 너무 다양하다"며 "트럼프가 원하는 게 뭔지 파악해서 새 정부에 넘긴다는 자세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이신화 고려대 교수도 "트럼프 1기는 시스템 중심으로 움직였는데, 지금은 트럼프 개인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어떤 게 좋은 건지 예측하기 정말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선재 인턴기자 seonjaelee96@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