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김태은 기자] 대한민국은 두 차례의 대통령 파면을 거치며 87년 체제의 한계를 뚜렷하게 느꼈습니다. 특히 이번 윤석열씨의 탄핵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주며 시대에 맞지 않는 87년 체제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87년 체제 이후 지속해 온 무소불위의 대통령 권력제와 승자 독식 구조는 권력의 과도한 집중, 진영·세대 간 극단의 갈등을 야기했습니다. 40년 가까이 지난 낡은 헌법이 시대적 변화를 담지 못한다는 지적과 함께 개헌의 필요성에는 정치권, 전문가들을 막론하고 이견이 없습니다. 개헌은 시대적 과제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40년 가까이 끌어온 87년 체제를 종식하고 제7공화국으로 가야 하는 문턱에 서 있습니다.
박근혜부터 윤석열까지…87년 체제에 갇힌 대한민국
우리나라 헌법은 지난 1948년 7월17일 제헌헌법 공표 이후 1987년까지 총 9차례 개정됐습니다. 소위 87년 헌법, 87년 체제로 불리는 현행 헌법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9차 개헌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가 도입되면서 기틀을 갖췄습니다. 5공화국 종식의 결과물이자,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향합니다.
하지만 올해로 38년째를 맞는 87년 헌법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흐름을 담아내진 못했습니다. 저출생·고령화를 비롯해 양극화, 지역 격차, 정치 갈등, 복지 등 대한민국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뒤따랐습니다. 때문에 1987년 개헌 이후 역대 국회마다 개헌 논의는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다만 38년째 결실을 맺지 못하고 정쟁으로 소모되는 등 공전만 거듭해 왔습니다. 1987년 이후 우리의 개헌 논의는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87년 체제에 갇혀있는 게 현실입니다.
개헌은 여전한 시대적 과제입니다. 특히 대한민국은 이번 불법 계엄과 헌정사상 두 번째 대통령 파면을 거치면서 국민들은 제왕적 대통령과 거대 국회 권력이 충돌하는 극단적 대립을 목도했습니다. 윤석열씨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한을 한껏 행사했던 대통령으로 평가되는데요. 윤씨가 비상계엄을 시도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제왕적 대통령제가 갖고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에 있었습니다. 때문에 개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쏟아졌고 개헌은 시대적 과제로 급부상했습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8일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제왕적 대통령제 문제는 2017년, 2018년 개헌특위나 문재인정부 때도 개헌의 화두였다"며 "아직까지 개헌이 안 됐으니 그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더불어 "최근 여야 간 과도한 갈등에서 드러나는 게 승자독식의 문제인데, 결국 승자독식에 의해서 진영 갈등이 너무 극단화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점 때문에 개헌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며 "분권과 협치가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 지난 2018년 7월17일 제헌 70주년을 맞아 제헌헌법과 개정헌법 등 대통령기록관이 소장해 온 헌법기록물 550매를 보존처리한 전(왼쪽)과 후 모습. (사진=뉴시스)
시대정신 된 개헌…무소불위·승자독식 뜯어고쳐야
개헌의 방향성은 정치적 견해 등에 따라 엇갈립니다. 하지만 제왕적 대통령제와 입법 권력의 거대화를 함께 견제해야 해야 한다는 게 중론입니다. 대통령과 국회의 힘을 동시에 빼고 서로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공통된 시각입니다.
정치권에선 대통령 5년 단임제도 수술대 위에 올려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권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임기를 줄이고 중간 평가를 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입니다. 그 대안으로 대통령 4년 중임제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국회 권력 간 상호 견제가 가능하도록 상하원 양원제를 도입하자는 안, 대통령에게 의회해산권을 부여하자는 주장, 승자독식의 선거 제대롤 해소하기 위한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이 거론됩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개헌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개헌의 핵심은 손볼 게 많지만 5년 단임제부터 뜯어고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권력구조를 제왕적 제통령제에서 4년 중임제로 하고 여야 다수당 대표가 내치를 맡는 총리제로 가야 한다"며 "분권형 대통령제로 하면서 2차 개헌을 하는 것이 점진적이고 국민 갈등을 최소화 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이후 2028년 총선 때 개헌 투표를 같이 하고 다음 대통령 때 7공화국으로 바로 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만큼, 기존 경제조항 등의 손질과 함께 기본권에 명시되지 못한 사회권·경제권 등을 폭넓게 개헌에 담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예를 들어, 87년 개헌 때 신설한 헌법 제119조2항 국민경제의 균형 발전, 적정 소득분배, 시장 지배력 및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주체 간 조화를 위해 정부가 경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가 대표적입니다. 경제민주화를 둘러싸고 해석이 끊임없이 엇갈리면서 현실에 맞게 손질이 필요하다는 설명입니다. 이밖에 기후위기, 자치분권, 저출생·고령화 등의 사회 문제도 헌법에 넣어야 한다는 의견도 함께 나옵니다.
장 교수는 "헌법 외에 저출생·고령화 문제라든지, 시대적 변화이자 사회적 변화를 헌법이 수용해야 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다만 인공지능(AI)과 같은 기술의 경우 5~10년 후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예측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원칙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대응해야 한다는 식의 원칙 규정을 넣고 헌법을 기초로 해서 법률로 세밀하게 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지난달 4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에서 열린 국가미래전략원 정치개혁 대담회 국가원로들, 개헌을 말하다에서 참석자들이 대담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진아·김태은 기자 toyouj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