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재연 기자]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에 서민들의 한숨 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외식·식품 업계가 제품 가격을 줄줄이 인상하면서 기업들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도 높아지고 있는데요. 이번 토마토Pick에서는 국내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그리드플레이션 의심 사례에 대해 정리했습니다.
그리드플레이션이란
탐욕을 뜻하는 그리드(Greed)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기업이 원가 상승분 이상으로 가격을 인상해 소비자에 부담을 전가하는 과도한 이윤 추구 행위를 말합니다. 특히 국내에서는 지난해 말 대통령 탄핵 국면부터 조기대선을 앞둔 최근까지 정부의 물가 억제력이 약해진 틈을 타 기업들이 가격을 줄줄이 인상해 논란이 됐는데요.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의 물가 관리·감독이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물가지수 웃도는 상승률
통계청에 따르면 3월 가공식품 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6% 상승했습니다. 2023년 12월(4.2%) 이후 1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인 것인데요. 이는 3월 전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2.1%)와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죠. 최근 식품업체가 줄줄이 식품 가격을 올린 것이 영향을 줬습니다. 1월에 식품기업 대상이 마요네즈와 소스류 가격을 19.1% 인상한 걸 시작으로 2월에는 롯데웰푸드가 제과·아이스크림 가격을 올렸습니다. 이어 CJ제일제당이 햄과 만두 가격을 11% 인상했고, 3월엔 농심·남양유업·동원F&B도 가격 인상에 동참했죠. 이에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케첩과 마요네즈, 분유, 식용유 등 16개 품목의 가격 상승 폭이 원재료 상승 폭보다 컸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역대급 실적에도 가격 인상
1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롯데GRS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7.7%, 87.6% 증가했습니다. 다만 이 기업이 운영하는 버거 프랜차이즈 롯데리아는 최근 총 65개 품목 가격을 평균 3.3% 인상했죠. 맘스터치도 지난해 전년 대비 매출 14.7%, 영업이익은 21.8% 증가했으며 버거킹을 운영하는 BKR 역시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이 기업들 모두 제품 가격을 최근 인상한 바 있습니다.
업계도 할말은 있다?
다만 식품 업계 등에서는 지난해 계엄 선포 이후 환율이 급등하면서 원재료 수입 부담이 커졌기 때문에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입니다. 관계자들은 내부적으로 최대한 비용을 감당하고자 노력했으나, 기업이 감당할 수준을 웃돌고 있다는 취지의 가격 조정 사유를 설명했죠. 실제로 2008년 이후 원달러 환율이 최고점을 기록하면서 농수산물과 가공식품 수입물가지수는 큰 폭으로 상승했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원달러 평균 환율은 1456.95원으로 전년 동기 1330.70원보다 9.5% 올랐는데요. 원달러 환율 상승은 곧 수입 단가에 반영되기에 물가 상승의 주요 요인으로 꼽힙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같은 달러 가격의 제품도 더 많은 원화를 지불해야 들여올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편인 가공식품 가격이 크게 상승한 것도 설명이 됩니다. 이달 4일 기준 소비자들이 주로 많이 사는 가공식품 16개 품목의 대형마트 기준 총가격은 10만 3957원으로 1년 전(2024년 4월 5일) 대비 9.5% 상승했습니다.
과거 탄핵정국땐 어땠나
가격 인상 중단 목소리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당시에도 식품류 가격은 7.5% 상승폭을 보이며 평년 대비 2배 가까운 상승 폭을 기록한 바 있습니다. 다만 상황은 올해가 더 좋지 않은데요. 환율 급등으로 수출 둔화가 불가피해진 상황인데다 고물가 현상이 장기화되면서 내수 시장의 침체는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올해 예상 소비자물가 상승률(1.9%)이 최저임금 인상률(1.7%)을 웃돌 것으로 보이며 경기 침체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물론 정부의 대응도 있긴 했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5월 ‘사업자의 부당한 소비자거래행위 지정 고시’를 시행한 데 이어 공정거래위원회는 관련법을 개정해 기업의 기만행위 실태조사에 나섰죠. 그러나 식품·외식 업계의 그리드플레이션을 막을 대책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인데요. 이에 소비자단체는 “도미노 가격 인상이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더 위축시킬 것”이라며 “지나친 가격 인상을 중단하고 원재료 하락분을 반영해 제품가격을 합리적 수준으로 돌려 소비자 신뢰 회복과 가격 안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반발했죠.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국내외 정세가 흔들리는 틈을 타 소비자들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일부 기업들의 행위는 비판 받아야겠습니다.
박재연 기자 damgom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