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던 군인이 21일 윤석열씨 내란죄 형사재판 증인으로 출석해서 한 말입니다. 윤씨는 12년 전 자신을 ‘스타 검사’로 만들어줬던 말을 내란수괴 혐의 피고인석에서 돌려받았습니다.
12·3 비상계엄을 선포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석열 씨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 앉아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는 21일 윤씨의 내란수괴 혐의 2차 공판기일을 열었습니다. 이날 재판부가 허용한 법정 중계를 통해 피고인으로 출석한 윤씨 모습이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법정 중계가 없었던 1차 공판(14일) 때 윤씨는 재판 시작 10분 전부터 법정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하지만 2차 공판인 이날엔 법정 중계를 의식한 탓인지 재판 시작 3분 전에야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2차 공판에선 증인으로 출석한 김형기 육군 특수전사령부 1특전대대장(중령)과 조성현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1경비단장(대령)에 대한 윤씨 측 반대신문이 이어졌습니다. 두 지휘관은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 뒤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상부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두 지휘관은 계엄의 위헌·위법성을 간파하고 상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겁니다.
특히 김 대대장은 재판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작심발언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2003년 이등병으로 입대해 23년간 군생활했다”며 “그동안 바뀌지 않은 건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며 “하급자가 (상관의 지시에) 복종하는 건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본연의 임무에 국한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대대장은 부당한 지시를 폭로했던 검사 시절 윤씨가 했던 말을 그대로 빌려와 2025년 윤씨 면전에서 돌려준 겁니다. 앞서 윤씨는 2013년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에서 배제된 것과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의 수사 외압을 폭로하며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윤석열씨에게 강골 검사 이미지를 심어주었고,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승승장구하는 바탕이 됐습니다. 그랬던 윤씨가 군통수권자로서 군을 정치에 이용한 혐의로 피고인석에 앉아 부하 군인에게 같은 비판을 듣게 된 겁니다.
윤석열씨가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가운데 지난해 12월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내부로 계엄군이 진입하자 보좌진들과 충돌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 대대장은 군 지휘부가 책상에 앉아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다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김 대대장은 명령을 하달한 이상현 전 1공수여단장과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이 잘못된 지시를 내렸냐는 윤씨 측 질문에 “저는 현장에서 몸으로 체감하다보니 잘못됐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임무만 주고 지시하는 사람이 뭐하겠나. 책상에 앉은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조 단장 역시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했습니다. 윤씨 측이 당시 군 병력으로 지시 이행이 불가능하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불가능한 지시를 왜 내리냐”라며 “군사작전으로 할 짓이냐”고 반발했습니다.
조 단장은 아울러 “12·3 비상계엄 이후 군인은 명령을 내리면 어떤 경우도 수행해야 하는 무지성의 집단으로 해석된다”며 “군인에게 명령은 목숨 바쳐 지켜야할 아주 중요한 가치지만 조건이 있다. 반드시 정당하고 합법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재판부 “변호인, 예상답변 벗어나니 같은 질문”
윤씨 측은 무리하게 증언 흔들기를 하다 재판부로부터 수차례 지적받았습니다. 윤씨 측은 특히 조 단장에게 ‘부하에게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하지 않았냐’고 집중 추궁했습니다. 탄핵심판에서 부당한 지시를 이행하지 않은 군인으로 알려진 조 단장 흠집내기에 나선 겁니다.
윤씨 측은 “윤덕규 2특임대 2지역대장에 대한 지시와 관련 검찰 진술, 헌재 증언, 본법정 증언이 모두 다르다”며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가 문제 있다고 판단해 유리하게 변명한 게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위증하면 처벌받는다고도 압박했습니다.
조 단장은 윤 대장에게 지시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윤 대장이 서강대교 북단에 도착해 임무가 뭐냐고 묻길래 우리에게 부여된 전반 임무를 ‘설명’하고 (국회로) 이동하지 말고 대기하라고 말했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도 윤씨 측은 조 단장 말을 끊고 ‘지시했다’를 전제로 같은 질문을 수차례 반복했습니다. 이에 재판부는 조 단장에 대한 반대신문 3시간여 동안 6차례 윤씨 측을 저지했습니다. 재판부는 “같은 질문으로 시간이 지연된다”며 “변호인이 신문하면서 예상한 답변과 흐름이 있는 것 같은데, 중간에 (증인이) 답변을 다르게 하니까 계속 포커스 맞춘다. 증인은 지시한 적 없다고 답변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윤씨는 증인신문이 끝난 뒤 절차 관련 논의해서 직접 발언에 나섰습니다. 윤씨는 “대통령만이 쓸 수 있는 권한인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해 계엄이 내란이라는 구조를 가지고 (기소가) 이뤄진 것”이라며 “비상계엄 자체가 내란이 아니라, 비상계엄이 내란이고 장기독재를 위한 것이라면, 집권계획 실현을 위해 군을 어떻게 활용하려고 했는지 근본적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