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1일(현지시간) 선종하면서 차기 교황 후보군에 눈길이 쏠리고 있습니다. 아시아·아프리카 등 유럽이 아닌 대륙 출신 추기경이 선거인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만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이어 다시 비유럽 출신 교황이 탄생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인인 유흥식 추기경도 차기 사도좌(교황 직위) 물망에 오르고 있습니다. 사회 현안에 목소리를 내온 유흥식 추기경은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씨에 대한 파면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절차인 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회의)는 선종 이후 20일 이내에 열리게 됩니다. 차기 교황을 선출할 투표권이 있는 추기경들은 교황청 내 방문자 숙소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 모여 투표를 진행합니다. 콘클라베에 참석한 모든 추기경들이 선거인이자 피선거인이 되는 겁니다. 이들은 각자 자신이 원하는 후보자의 이름을 투표지에 적는데, 당선되려면 3분의2 이상을 득표해야 합니다.
유흥식 추기경은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콘클라베에 참석할 자격이 있습니다. 콘클라베 참석 자격인 80세 미만에 해당하는 73세이기 때문입니다. 염수정 추기경도 현직이기는 하지만 81세입니다. 한국인 추기경이 콘클라베에 참석하는 일은 1978년 김수환 추기경 이후 47년 만입니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이 2022년 12월2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유흥식 추기경은 1951년 11월17일 충남 논산시에서 태어났습니다. 1969년 가톨릭대에 입학하고 1979년 12월 사제 수품을 받았습니다. 이후 2003년 주교 수품을 받고 2005년부터 2021년까지 대전교구장을 역임했습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 따르면, 유흥식 추기경은 지난 2021년 6월11일 주교일 당시 교황청 성직자성(현 성직자부) 장관과 대주교에 임명됐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교황청 장관이 된 겁니다. 교황청 성직자부는 사제들과 부제들의 사목 전반을 심의하고 이와 관련해 주교들에게 도움을 주는 부서입니다.
이후 2022년 5월29일 추기경까지 임명됩니다. 김수환·정진석·염수정 추기경에 이어 한국인으로서 4번째로 추기경이 된 겁니다. 서울대교구장이 아닌 대전교구장이 추기경이 된 일은 당시가 유흥식 추기경 사례가 최초였습니다.
유흥식 추기경은 교회 밖 세속에서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활동도 해왔습니다. 유 추기경은 2010년 3월8일엔 4대강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연대가 발표한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전국 사제 선언문에 서명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3월21일에는 헌법재판소가 윤석열씨에 대해 파면 결정을 조속히 해달라는 취지로 담화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는 국회가 윤씨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지 100일째 가까이 되는 때였지만, 헌재는 윤씨에 대한 탄핵 선고기일도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윤씨의 탄핵이 기각되고 그가 대통령직에 복귀하는 것 아니냐, 윤씨가 대통령직에 복귀하면 2차 계엄이 선포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증폭될 정도였습니다.
이에 유홍식 추기경은 담화문에서 "위기의 대한민국을 위한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헌재에 호소한다"며 "되어야 할 일은 빠르게 되도록 하는 일이 정의의 실현이며 양심의 회복"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우리 안에, 저 깊숙이 살아 있는 정의와 양심의 소리를 듣는다면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고통에는 중립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헌법이 말하는 정의의 판결을 해달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러면서 "올바르면서도 조속한 회복을 위해 빠른 시일 내에 잘못된 판단과 결정을 내린 사람들에 대한 시시비비를 명백히 밝혀주길 촉구한다"고 했습니다.
유흥식 추기경은 차기 교황 후보군에서 다크호스로 분류됩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12월5일 다음 교황이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나올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유흥식 추기경을 유력한 교황 후보 중 한 명으로 지목하기도 했습니다.
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진이 22일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 영성센터 건물 외벽에 걸려 있다. (사진=연합뉴스)
유흥식 추기경은 차기 교황 선출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 ‘더 칼리지 오브 카디널스 리포트에서 자세한 자료를 제공하는 추기경 41명에 들어갔습니다. 다만 해당 사이트가 꼽은 유력 후보 12명에는 들지 못했습니다.
투표권자들의 인적 구성이 유흥식 추기경을 비롯한 아시아 등 비유럽 대륙 출신 후보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AFP 통신에 따르면 현재 투표권이 있는 추기경은 135명입니다. 대륙별로는 △유럽 53명 △아시아 23명 △북미 20명 △아프리카 18명 △남미 17명 △오세아니아 4명입니다. 유럽보다 유럽이 아닌 대륙 출신 추기경이 더 많고, 유럽에 이어 아시아 출신이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