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정훈 기자] 윤석열씨 탄핵으로 인한 조기 대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권이 공약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중 시민들의 일상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공약 중 하나가 주 4.5일 근무제 시행인데요. 번갈아 대통령을 배출한 거대양당이 모두 4.5일제를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제3지대에서 대통령이 당선되는 이변이 연출되지 않는 한 향후 5년 내로 우리나라 노동환경이 크게 바뀔 수도 있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정치권은 어떤 식으로 노동환경을 바꾸려 하는 것일까요? 현실성은 있을까요? 토마토Pick이 4.5일 근무제 공약을 진단했습니다.
지난해 7월 시민들이 성수역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주 4.5일제 대두
주 4.5일제는 월화수목은 8시간, 금요일을 4시간만 근무하고 오후는 쉬는 방식으로 근무체계를 개편하자는 주장입니다. 사실 4.5일 근무제 이야기가 나온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층 강도 높은 주 4일제가 제기되기도 했는데요. 지난 2022년 대선 정국에서도 거론됐고, 당시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주 4일제를 제시했습니다. 이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4일제와 5일제 사이에서의 절충안으로 4.5일제를 제안한 것이죠. 실제로 우리나라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023년 기준 1872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최상위권에 속합니다. 주52시간제 도입 이후 하락세지만 여전히 높은 편이죠.
해외에서도 몇몇 국가가 4.5일제를 적용 중인데요. 대표적으로 아랍에미리트(UAE)는 4.5일제를 전면 도입했고, 나아가 ‘주중 압축 근무제’를 통해 주 4일 근무까지 가능하게 했습니다. 벨기에도 주 4일제를 도입했으며 서유럽에서는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주 4일제가 보편화됐죠. 경제 규모는 선진국 축에 속하는데 노동환경이 뒤따르지 못하니, 근로시간 단축 요구가 나오는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일 것입니다.
민주당의 4.5일제, 근무시간 줄지만…
그렇다면 지금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4.5일제는 정확히 어떤 내용을 다룰까요? 표현은 같지만 내용은 완전히 다릅니다. 먼저 민주당의 4.5일제는 실질적인 근로시간 감축을 목표로 합니다. 현행 주 40시간인 법정 근로시간을 36시간으로 줄이자는 것입니다. 금요일 오후 근무시간 4시간을 제함으로써 금요일 오후의 여가시간을 만들자는 것이죠. 민주당의 4.5일제는 다음 단계로 가는 징검다리인데요. 민주당은 장기적으로 주 4일제(32시간제)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식 4.5일제는 개인의 여가시간을 늘리고 직장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식으로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하자는 취지입니다. 개인의 여가를 늘리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남는 시간을 자녀 돌봄 및 학업, 은퇴 전 자기계발 등에 쓸 수 있으니 사회 여러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리라고 본 것입니다.
다만 근로시간 감축으로 인한 기업의 부담 증가가 문제로 작용하죠. 직원 한 명만 빠져도 생산량이 줄고 타격이 커지는 중소기업에게는 더욱 뼈아픈 제도입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결국 직원을 늘려야 하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같은 생산량에 인건비만 늘어나게 되는 셈이고요. 그렇다고 직원의 줄어든 근무시간만큼 임금을 줄이자니 이는 직원들로서도 손해입니다. 실제로 국내 몇몇 기업들이 주4일제를 시도했다가 생산성 악화 등의 이유로 사실상의 회귀를 했죠. 민주당안이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입니다.
국힘의 4.5일제, ‘조삼모사’ 지적
국민의힘의 4.5일제는 금요일의 근무시간을 줄이자는 데에서는 민주당과 상통하는데요. 다만 줄어든 만큼 월~목 다른 요일에 더 일해야 합니다. 금요일 근무시간은 줄이되 총 근무시간(40시간)은 지키자는 것이죠. 다만 민주당안과 달리 총 근무시간에는 변동이 없어 기업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근무시간 단축으로 생길 부작용이 적다는 의미이니 안정적이겠죠. 부담이 적은 만큼 기업들이 장기적이고 단계적인 변화를 추진할 수 있습니다. 최근 국내 경제상황이 악화일로를 걷는 가운데 기업의 자율성과 개인의 여가 사이에서 찾은 나름의 중재안인 셈입니다. 다만 실질적 근로시간 감축 없이 ‘주 4.5일제’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던 점이 선거용 공약이라는 비판과 함께 ‘조삼모사’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개선 필요성 있지만…근본 문제는
국민의힘의 안은 민주당안보다 기업친화적이지만 그럼에도 업계 불만은 큽니다. 노사가 논의 끝에 자율적으로 정할 일을 국가가 제도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주 40시간 이내’로 법정근로시간을 정한 국가는 많지 않습니다. 즉 주 노동시간은 우리나라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러나 OECD 기준 연평균 노동시간은 크게 차이가 나는데요. 대표적으로 독일은 법정 근로시간을 하루 8시간, 연장 근로시간 최대 2시간으로 정해뒀습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하죠. 그러나 연평균 노동시간은 1349시간으로 우리나라보다 크게 적습니다. 500시간 이상의 차이는 여가 시간의 사용 여부에서 발생하는데요.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경색된 관념이 문제가 되는 것이죠. 연차가 있어도 쓰지 못하고, 제도가 있어도 활용하지 못하게 됩니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는 문화가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죠. 생산성을 위주로 하되 휴식과 철저히 분리함으로써 인식을 바꾸고, 균형잡인 파트타임 근로와 유연근로제 등 제도적 지원을 뒷받침해야 기업 부담을 줄이며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정치권은 대선을 앞두고 제도적 규제를 우선하기에 급급하죠. 씁쓸할 따름입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